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임팔 전투 (문단 편집) ===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참전 === [Include(틀:한국 독립운동의 전투목록)] [[파일:koreanindependencefighter.jpg]] [[파일:koreaburma1.jpg]] [[대한민국 임시정부]] 직속 군대인 [[한국광복군]] 대원 9명이 미얀마 전선에 투입되었을 때 [[영국군]]과 함께 바로 이 임팔 전투 당시 활동하였다고 한다. 주로 [[심리전]]을 전담했으며, [[포로]]의 심문이나 통역, [[일본어]] 번역, [[삐라|선전물]] 제작 등을 맡아 했다고 한다. 구체적으로는 대장 한지성, 부대장 [[문응국]], 대원 [[최봉진(독립운동가)|최봉진]], 김상준, 나동국, [[박영진(독립운동가)|박영진]], 송철, 김성호, 이동수. 부대의 명칭은 '인면전구공작대(印緬戰區功作隊)'이다. 명칭의 뜻은 '[[인도]] - [[미얀마|버마]] 전선의 공작부대'라는 의미이다. 이들은 [[영국 육군]] 중 ~ 대위 계급을 부여받고 피복 또한 영국 육군 [[장교]]와 동일한 것을 착용했다. 인면전구공작대 역시 이러한 대우에 걸맞은 활약상을 보여줬는데, 이들은 1943년 8월 영국군 총사령부가 있는 인도 [[캘커타]]에 도착하여 4개월간 교육 후 1944년 3월 임팔 전선에 투입되었고, 1944년 5월, 포위된 줄 알고 현지에서 죽을 각오로 싸우려던 영국 육군 17사단에게 포위망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음을 문응국 대원이 감청을 통해 알아내어 통보해, 퇴각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전력을 보전케 하는 등으로 호평을 받았다. 또한 인면전구공작대 파견 대원들은 기본적으로 [[영어]]와 [[일본어]] 모두 구사할 수 있었으며, 적진 교란방송, 일본군 포로심문, 문건 번역 등 심리전에 투입되었다. [[임팔]] - 코히마 전역에 파견된 IFBU(영국 특수작전집행부 산하 인도지구 전지선전대) 소령 알프레드 트루트웨인 소령의 기록에는 [[광복군]] 대원들이 일본어 전단 작성뿐만 아니라 노래에도 해박하여 [[사면초가|일본군의 향수병을 자극할 노래를 골라 틀었다 한다]]. [[https://m.yna.co.kr/view/AKR20220413085700504?section=search/news|#]] 실제로 일본 육군 15사단 소속 조선인 [[군무원|군속들]]이 선무공작방송을 듣고 단체로 투항하거나, 육군 [[소대장]]([[소위]]) 1명이 [[소대]]원들 일부와 함께 항복하러 오는 일도 있었다. 이들은 또한 일본 육군의 소총 사거리 내에서 직접 선무 방송을 하는 등, 최전방에서 다른 영국군들과 함께 발로 뛰었다. 이후 영국군은 [[루이 마운트배튼]] 제독이 직접 이들을 치하할 만큼 호평하며 지속적으로 [[충칭]]의 임시정부에 인원 증파를 요청하였으며, [[중화민국]] 정부에 의해 불허된 인원을 제외한 나머지 대원을 임시정부 차원에서 1945년 3월 파견하려 했지만, 중화민국 정부가 거부하여 이 제안은 무산되었다. 남은 공작대원들은 1945년 5월, 연합군의 [[랑군]] 탈환전에 종사하였으며 1945년 9월 10일, 전원 충칭의 광복군총사령부로 복귀하였다. 영국군은 이들이 종전 이후에도 업무를 맡아주길 희망할 정도로 인면공작대를 끝까지 신뢰했다. 임팔 작전에서 무다구치 렌야의 삽질이 워낙 화려하다 보니, 한국의 [[역덕후|역사]] 및 [[밀덕후|밀리터리 마니아 팬덤]] 사이에선 이 인면전구공작대와 연결해서 반농담 삼아 아예 렌야를 '일본군 내에서 교란 작전을 편 인면전구공작대 소속 스파이'로 설정하는 드립도 유행했고, 심지어 [[한반두|광복군 일원]]이라는 드립도 있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임팔 작전 후 버마 전선의 전면적 붕괴를 막기 위해 44년 6월 증파된 일본군 49사단은 조선 [[경성부]]([[용산구|용산]])에서 불과 5개월 전인 44년 1월 신편된 사단으로 이런 사유로 사단 정원 1만 7천명 중 20%인 약 3400명은 조선인 군인/군속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49사단은 이후 벌어지는 버마 전역에서 차츰 소모되어 친드윈강 인근에서 전멸하게 된다. 자칭 작전의 신이자 버마 전선을 말아먹은데 기여한 [[츠지 마사노부]]의 회고록에 49사단의 조선인 병사에 대한 언급으로 외모나 전투 시 동작 등 평소에는 전혀 구분이 안 되지만 부상당해서 야전병원에서 고통으로 "아이고!" 라고 하면 비로소 조선인인 걸 알게 된다는 [[군의관]]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전선에 선 [[광복군]]들과 반대편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을 조선인 병사들과 [[일본군 위안부]]들의 복잡한 심경과 고뇌가 우리 민족에게 있어 버마 전선의 모습이었을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